[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2022 하반기 베스트셀러 1위에 등록된 '아버지의 해방일지' 올해 초부터 도서를 빌리려 했는데 항상 예약이 걸려 있어. 예약조차 할 수 없었다. 2023년 늦여름이 돼서야 읽게 됐다. 

줄거리 및 감상평

 

주인공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방문한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본인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한다. 주인공이 알고 있던 아버지는 사상에 젖어 가장으로서 경제적 능력도 없는 무능하고 사상에만 몰두하여 가족에 대한 관심은 없는 아버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버지가 주인공이 모르는 다른 인물들과 관계를 듣게 되면서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첫 문장부터 강렬하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고상욱씨. (빨치산은 파르티잔에서 온 말로, 정규부대에 속하지 않은 무장 전사. 좌우익과 관련 없이 비정규 게릴라 부대를 포괄적으로 부르는 용어) 아버지는 사회주의자로 사상에는 빠삭했지만 농부로서는 형편없었다. 그러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황사장을 만난다.

사상이란 저렇듯 느닷없이 타인을 포용하게 만드는 대단한 것일까?  

황사장의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로 돈독한 정을 나눴던 사이였다. 주인공은 작은아버지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알린다. 어린 시절 기억한 작은 아버지는 항상 아버지를 탓하고 싸움을 걸었다. 

 

밀란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이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

아버지라는 것이 이런 건갑 보다. 산에 있을 적보다 더 무섭더래. 경찰보담 군인보담 미군보담 더 무섭더래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마지막 장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고, 담배 친구였던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사상가이지만 아버지 연모를 느끼게 된 주인공을 볼 때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생각한 사상은 서로 돕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사상을 믿는다는 말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자기 집에 재워주고 잠자리까지 내주는 걸 보면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이 느껴진다.  나 또한 사회주의자, 빨치산이라고 하면 선입견이 있었지만, 여기서 표현된 아버지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친구이자,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에 상처 입은 피해자 이기도 했다.